밤 12시,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 시간에 오히려 문을 여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요. 저도 처음엔 그냥 제목이 특이해서 눌렀습니다. 근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때쯤엔, 이미 한 에피소드가 끝나 있었습니다.밤에만 열리는 식당, 그 설정이 이미 반칙이다일반적으로 심야 영업 식당이라고 하면 술집이나 편의점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밤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만 문을 여는 심야식당은, 낮에는 절대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사람이 가장 솔직해지는 건 피곤하고 취약해지는 늦은 밤이라는 걸, 이 영화는 설정 하나로 이미 보여주고 있었습니다.이..
열심히 달리는데 왜 더 지치기만 할까요? 저도 한동안 그 질문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그 답을 조용히 건네줬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야기입니다. 산림청이 주관한 '산숲 하면 떠오르는 영화' 인기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지쳐서 멈춘 사람들이 시골로 간 이유영화 속 주인공 혜원은 임용고시(교원임용시험)를 준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삶을 이어가다 결국 시험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여기서 임용고시란 공립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치르는 국가시험으로, 수험 기간이 길고 경쟁이 치열해 많은 청년이 몇 년씩 도전하는 시험입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적 있어서 혜원의 귀향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고향에 내려오자마자 혜원은 소꿉친..
현재가 답답할 때, 사람들은 습관처럼 과거를 꺼냅니다. "그때 그 시절이 좋았지"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입에 올립니다. 저도 그런 사람인지라,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꽤 오래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1920년대 파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단순한 시간 여행 판타지가 아닙니다. 현재를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꽤 정교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잃어버린 세대가 파리에 모인 이유1920년대 파리가 예술의 황금기를 맞이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 환멸을 느낀 미국 청년 지식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파리로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흔히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세대란, 전쟁의 상처와 물질..
행복을 찾아 떠난 사람이 결국 돌아온 곳이 출발점이었다면, 애초에 떠날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질문을 머릿속에 달고 다녔습니다. 잘나가는 정신과 의사가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며 훌쩍 떠나는 설정이 처음엔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졌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오히려 그게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행복의 정의, 정말 우리는 알고 있을까헥터는 미모와 능력을 겸비한 여자친구 클라라가 있고, 상담실은 환자들로 가득 차 있으며, 삶에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정작 자신이 행복한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상담실에서 "저는 불행해요"라고 말하는 환자들을 매일 마주하면서, 어느 순간 헥터 본인도 행복의 정의를 잃어버린 것이죠.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헤도닉 적응(hedonic adapta..
쉬는 날인데도 괜히 불안한 적 있으십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달력에 빨간 날이 찍혀 있어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고 하루를 흘려보낸 날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일본 영화 한 편이 제가 쉬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2007년작 〈안경〉입니다.슬로우시네마가 주는 힐링의 정체〈안경〉은 이른바 슬로우시네마(Slow Cinema) 장르에 속합니다. 슬로우시네마란 사건 전개나 갈등 구조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일상의 속도 그대로를 화면에 담아내는 영화적 방법론을 말합니다. 극적인 반전도 없고 복잡한 인물 관계도 없습니다. 그냥 밥을 먹고, 바닷바람을 맞고, 빙수를 혀로 녹이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처음 이 영화를 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오히려 말을 못 꺼낸 적 있으신가요. 저도 한동안 아버지와 그랬습니다. 뭘 말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그냥 시간을 흘려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들리나요'를 보면서 그 시절이 떠올랐고, 결국 소통이라는 게 전문 지식보다 용기의 문제라는 걸 다시 실감했습니다.소통 전문가에게도 풀리지 않은 숙제가 있었다연간 7천 회가 넘는 강연을 해온 김창옥 교수님을 처음 접한 건 아버지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재미있고 울림 있다는 소문대로, 강의를 듣고 나면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들리나요'에서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교수님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무대 위에서 청중과 거침없이 교감하던 그 사람이 정작 가장 가까운 아버지와는 수십 년째 제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