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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나잇 인 파리 포스터

     

    현재가 답답할 때, 사람들은 습관처럼 과거를 꺼냅니다. "그때 그 시절이 좋았지"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입에 올립니다. 저도 그런 사람인지라,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꽤 오래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1920년대 파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단순한 시간 여행 판타지가 아닙니다. 현재를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꽤 정교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잃어버린 세대가 파리에 모인 이유

    1920년대 파리가 예술의 황금기를 맞이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 환멸을 느낀 미국 청년 지식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파리로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흔히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세대란, 전쟁의 상처와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시대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한 청년 예술가 집단을 의미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26년 출간한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서문에서 처음 공식화된 표현입니다.

    당시 미국은 경제적으로 호황이었지만, 컨베이어 벨트 도입으로 대표되는 자동화 생산 체제가 일자리를 오히려 줄이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청년들이 설 자리가 없었고, 모두가 같은 재화를 소비하고 같은 취미를 즐기는 획일화된 사회가 지식인들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 탈출구로 선택한 곳이 바로 파리였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길은 바로 그 심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현한 인물입니다. 약혼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에 끼지 못하고 혼자 파리의 밤길을 걷는 그의 모습이 저는 솔직히 좀 낯익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겉돌며 혼자 생각에 잠기는 그 감각,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아방가르드 운동과 예술가들의 실제 민낯

    영화에는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같은 실존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주도했던 예술 경향이 바로 아방가르드(Avant-garde) 운동입니다. 아방가르드란 전통적인 예술 사조를 거부하고 새로운 형식과 사회적 의식을 결합하는 전위예술 운동을 뜻합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Cubism)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입체주의란 하나의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해석하여 평면 위에 표현하는 화풍으로, 당대에는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연 사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영감을 받아 초현실주의(Surrealism) 화풍을 개척했습니다. 초현실주의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예술적으로 시각화하는 창작 방법론입니다.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고집》이 파리 체류 시기에 완성된 작품이라는 점은 당시 파리가 얼마나 지적 자극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제가 영화를 보면서 흥미롭게 느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위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세계를 사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피카소 주변에는 후원자도 있고, 라이벌도 있고, 애인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고갱은 아리아드네에게 노골적으로 구애하고, 달리는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인간관계의 복잡함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 장면들에서 오히려 위안을 받았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주요 면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하드보일드 문학의 창시자.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참혹한 시대를 그려냈습니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위대한 개츠비》로 물질만능주의를 정면 비판했습니다.
    • 파블로 피카소: 입체주의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와 치열한 경쟁 관계를 통해 현대미술을 이끌었습니다.
    • 살바도르 달리: 초현실주의의 대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시각예술로 구현했습니다.
    • 조세핀 베이커: 흑인 차별의 시대에 파리에서 자유를 찾은 무용가이자 아이콘. 이후 프랑스 판테온에 안장되었습니다.

    황금기라는 환상, 그리고 현재 외면의 위험

    황금기(Golden Age)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 사후에 붙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사자들에게는 그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치열한 현재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그 시대 속에서도 "더 옛날 파리"를 동경하는 예술가들을 만납니다. 고갱과 드가가 "우리 시대보다 르네상스가 진짜 황금기였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감독이 영화 전체를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압축한 장면이라고 저는 봤습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지금보다 다른 시절을 동경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심리를 학문적으로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부릅니다. 노스탤지어란 과거를 이상화하며 현재에 대한 불만족을 달래는 심리적 기제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소더스트롬 외(2016) 연구에 따르면, 노스탤지어는 단기적으로는 정서적 위안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현재 적응력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사우샘프턴대학교 심리학과 노스탤지어 연구).

    그런 맥락에서 영화 결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주인공이 헤밍웨이로부터 "약혼녀가 바람을 피운다"는 말을 듣고 현실로 돌아와 파혼을 결심하는 장면은, 솔직히 말하면 다소 뜬금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위인에게 현실의 답을 구하고, 현실 상황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극단적인 결론으로 치닫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이기보다 조금 충동적이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느껴졌습니다. 과거 환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현실 판단력을 흐릴 수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파리 풍경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과 추천 포인트

    이 영화를 두고 "낭만적인 시간 여행 판타지"로 보는 시각도 있고, 저처럼 "현재 회피 심리에 대한 비판적 우화"로 읽는 시각도 있습니다. 어떤 해석이 맞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감독 우디 앨런 본인도 특정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힌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꽤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달리, 피카소 같은 인물들이 그냥 이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등장할 때, 그들의 실제 작품 세계와 연결해서 보면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예술가들을 배경지식으로 알고 가면 감상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우디 앨런이 이 영화를 통해 오마주한 1920년대 파리 문화의 깊이는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도 높이 평가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Film Institute).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주인공이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위인들과 대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매사에 그런 태도로 임하는 사람이 요즘 주변에 많지 않다 보니, 그 장면들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날, 혹은 "내가 만약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이라는 가정을 즐기는 분이라면 충분히 추천드릴 만한 영화입니다.

    다만 한 가지 당부를 드리자면, 영화를 보고 나서 현재가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주인공의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니라 여러분의 이야기가 시작된 신호일 수 있습니다. 황금기는 항상 지나고 나서야 황금빛으로 보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시대가 될 수 있으니까요.


    참고: https://youtu.be/5029UEumzD4?si=1i1MRUrU6TGICZs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