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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서시'를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그냥 외워야 할 시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시인 동주>를 보고 나서는 그 짧은 시 한 편이 완전히 다르게 읽혔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한 청년이, 그 다짐을 목숨으로 지켰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속 시인의 삶 — 마루 밑 항아리에 숨겨진 시집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윤동주 시인의 시가 이렇게 위험한 것이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서정시를 쓴 시인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즉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 통치하던 시기에는 한글 사용 자체가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이름 아래 조선인은 일본어를 써야 했고, 창씨개명(創氏改名)으로 조선 고유의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여기서 창씨개명이란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제 변경하게 한 제도로, 1940년 2월부터 시행되어 결국 조선인의 80% 가까이가 일본 이름을 갖게 된 역사적 폭력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한글로 시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문학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잡혀갈 수 있는, 목숨을 건 저항이었습니다. 치안유지법이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활용한 법률로, 이 법 하나로 수많은 조선인이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윤동주는 1938년부터 4년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시를 썼습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한글 학자 최현배 선생이 조선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쓰인 장면 중 하나가 바로 그 최현배 선생이 민족운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학교에서 쫓겨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이후 윤동주가 쓴 '슬픈 족속'이라는 시에서 흰 옷을 입은 조선 민족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장면은, 말 한마디 직접 항변하지 않고도 얼마나 깊은 슬픔을 담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1941년 11월, 윤동주는 18편의 시를 묶어 시집을 완성하고 앞부분에 서시(序詩)를 새로 써 넣습니다. 시집의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러나 출판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담당 교수조차 "내용이 불온하다"며 출판이 어렵다고 했으니까요. 윤동주는 손으로 직접 시집을 세 부 베껴 써서 한 부는 교수에게, 한 부는 친구 정병욱에게 전했습니다. 그 시집은 훗날 정병욱의 가족이 마루 밑 항아리 속에 숨겨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지켜냈고, 해방 이후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시집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용기와 헌신이 필요했다는 게, 지금 우리가 책 한 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치는 것과 너무나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 창씨개명(1940년 2월 시행) — 조선인의 80%가 일본식 이름으로 강제 변경
- 치안유지법 — 독립운동·한글 창작 활동을 탄압한 식민지 법률
- 내선일체 —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구호 아래 강행된 극단적 동화 정책
-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 미국인 선교사 경영의 기독교 학교로, 일제 말기까지 조선어 수업을 유지한 거점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생전 출판 불가, 1948년에야 처음 세상에 나옴
독립운동가 윤동주 — 펜을 든 영웅의 죽음과 남겨진 울림
영화를 보면서 저는 한 가지 사실에 계속 걸렸습니다.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 이름 '히라누마 도주'로 창씨개명 서류를 제출해야 했던 장면입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도항 증명서(渡航證明書)를 받을 수 없었는데, 도항 증명서란 조선인이 일본 본토로 건너가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했던 허가 서류를 말합니다. 이름을 잃어버리는 대가로 겨우 배를 탈 수 있었던 그 청년의 마음이 어땠을지, 영화 속 윤동주의 표정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1942년 봄, 현해탄을 건넌 윤동주는 도쿄 릿쿄대학을 거쳐 교토 도시샤대학에 입학합니다. 이국의 하숙방에서 그가 쓴 '쉽게 쓰여진 시'의 첫 구절,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는 그냥 읽으면 서정적이지만, 배경을 알고 읽으면 너무 쓸쓸하고 처절합니다. 제가 직접 이 시를 다시 찾아 읽어봤는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시가 현존하는 윤동주의 최후의 시라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더더욱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1943년 7월, 특고경찰(特高警察)이 윤동주의 하숙방을 급습합니다. 특고경찰이란 일본 제국주의 시대 사상범과 독립운동가를 전담으로 탄압하던 비밀경찰 조직입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의 정치 사찰 기관에 해당하는데, 이들이 보관해온 특고월보(特高月報)라는 내부 문서에는 윤동주가 조선인 유학생들과 모여 조선의 미래와 민족 문화의 보존을 이야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조선 독립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체포의 빌미가 된 것입니다.
1944년 4월,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됩니다. 사상범이었기에 독방에 수용되었고, 그곳에서 10개월을 보냈습니다. 이 시기 형무소에서 조선인 수감자들에게 정체불명의 주사가 놓였다는 증언들이 있습니다. 당시 수감자였던 김헌술 씨의 기록에는 일주일간 매일 주사를 맞으며 계산 실험에 동원되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윤동주의 가족 역시 형무소에서 "내용을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인체실험 여부를 단정할 직접적인 증거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출처: 국사편찬위원회), 1944년에서 45년 사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만 259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스물여덟의 나이로 형무소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해방이 겨우 반년 남은 때였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가 독립운동가 처형을 정당화하는 문서에 끝내 사인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는 모습은 단 한 마디 대사도 없었지만, 그 침묵이 어떤 웅변보다도 더 크게 울렸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문학의 힘을 믿었다'는 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님을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오늘날 윤동주는 한국의 국민 시인이 되었고,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려 가르쳐지고 있습니다(출처: 일본 문부과학성). 바로 그 일본 땅에서 이방인으로 죽어간 청년의 시가, 이제 그 땅의 학생들에게 읽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하게 위안이 됩니다. 역사는 결국 진실한 목소리를 지워내지 못한다는 것을, 윤동주의 삶이 증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시인 동주는 실화인가요?
A. 네, 실존 인물인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입니다. 감옥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연희전문학교 시절부터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부 연출은 감독의 해석이 가미되어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Q. 윤동주는 왜 감옥에 갇혔나요?
A. 1943년 7월, 일본 특고경찰이 윤동주의 하숙방을 급습하여 체포했습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치안유지법 위반, 즉 조선인 유학생들과 모여 조선의 독립과 민족 문화 유지를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한글로 시를 쓴 행위 자체가 당시에는 독립운동으로 간주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Q. 별 헤는 밤은 언제 쓰여진 시인가요?
A. '별 헤는 밤'은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어머니와 고향, 동무들을 그리워하며 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는 이 시는, 그가 체포되기 전에 쓴 작품으로 그의 대표 서정시 중 하나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당시 식민지 청년의 외로움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Q.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요?
A. 윤동주가 손으로 직접 베껴 쓴 시집 한 부를 친구 정병욱에게 전했고, 정병욱은 학도병으로 출정하면서 고향 가족에게 이것을 맡겼습니다. 가족은 마루 밑 항아리 속에 숨겨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지켜냈고, 해방 후 1947년 '쉽게 쓰여진 시'가 경향신문에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48년, 드디어 시집이 정식 출판되었습니다.
결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제가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 그 시절을 어딘가 먼 역사책 속 이야기로만 여겨왔는데, 이 영화 한 편이 그 거리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한글로 글을 쓰고, 내 이름을 당당히 쓰고, 우리말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 그것이 누군가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동주처럼 소리 높이 외치지 않고도, 조용히 펜을 들어 진심을 담은 사람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도요.
유튜브 쇼츠를 넘기는 시간 중 딱 두 시간만 내어 이 영화를 보고, 그다음에 '서시' 한 편만 다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교과서에서 외웠던 그 시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