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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리는데 왜 더 지치기만 할까요? 저도 한동안 그 질문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그 답을 조용히 건네줬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야기입니다. 산림청이 주관한 '산숲 하면 떠오르는 영화' 인기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지쳐서 멈춘 사람들이 시골로 간 이유
영화 속 주인공 혜원은 임용고시(교원임용시험)를 준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삶을 이어가다 결국 시험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여기서 임용고시란 공립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치르는 국가시험으로, 수험 기간이 길고 경쟁이 치열해 많은 청년이 몇 년씩 도전하는 시험입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적 있어서 혜원의 귀향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혜원은 소꿉친구 은수를 만납니다. 은수는 지역 농협에서 일하며 시골에 뿌리내리고 사는 친구로, 두 사람이 포옹하는 장면에서 저는 솔직히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소꿉친구 재하는 회사를 떠나 아버지 과수원을 물려받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셋 다 이유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미장센(mise-en-scène)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 즉 조명·구도·색감·소품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영화 기법입니다. 이 영화는 배추된장국이 끓는 소리, 눈 덮인 땅에서 꺼낸 감자의 질감, 개나리빛으로 물든 나무들을 클로즈업 촬영으로 담아냅니다. 그 장면들이 ASMR처럼 작동해 보는 내내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리틀 포레스트가 이처럼 자연 풍광을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배경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산림은 1970년대부터 국가 주도로 진행된 산림녹화 사업을 통해 복원되었습니다. 산림녹화란 벌거숭이 산에 나무를 심고 숲을 되살리는 정책으로,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산림 면적은 국토의 약 6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출처: 산림청). 영화 속 울창한 숲은 그 수십 년간의 노력이 만들어낸 풍경입니다.

배추 한 포기로 배우는 쉬는 법, 퀘렌시아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배운 건 요리 씬이었습니다. 저는 요리를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요리는 재료를 많이 갖춰야 하고 제대로 배워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혜원은 눈 속에 묻혀 있던 배추 두 장, 냉장고에 남아 있던 재료 몇 가지로 배춧국을 끓이고 감자전을 부치고 수제비를 만듭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저는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요리란 '한정된 재료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행위'라는 걸 처음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요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퀘렌시아(querencia)입니다. 퀘렌시아란 투우 경기 중 소가 잠시 물러나 숨을 고르는 자신만의 구역을 가리키는 스페인어로, 현대에는 '자신만의 안식처 또는 심리적 피난처'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쉽게 말해 거기서 만큼은 완전히 힘을 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영화 속 혜원에게 그 공간은 고향 집 부엌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느껴보니, 퀘렌시아는 멀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동네 공원 벤치일 수도 있고, 집 안 창가 한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그런 공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번아웃(burnout)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보면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번아웃이란 과도한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진으로 인해 의욕과 기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는 상태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부터 번아웃을 공식 직업 현상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만성 직장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출처: WHO). 혜원이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떠난 것도, 제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번아웃의 한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틀 포레스트가 이 시대에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방향을 잃었을 때 무조건 앞으로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 한정된 재료로도 충분히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
-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찾는 일이 생산성보다 먼저일 수 있다
- 자연의 계절 흐름처럼, 사람에게도 겨울이 있고 봄이 온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상에서 억지로 힘을 쓰기보다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그게 어쩌면 더 지혜로운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대단한 자연 속으로 떠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퇴근 후 잠깐 들른 공원, 혼자 끓인 국 한 그릇, 그게 이미 작은 리틀 포레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찾는 데 정해진 타이밍 같은 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