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리 때문에 어이없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아버지께서 퇴직 후 실업급여를 받으실 때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느꼈습니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바로 그 답답함을 스크린 위에 그대로 꺼내놓은 영화입니다. 심장병으로 일을 쉬게 된 목수, 댄의 이야기 영국 뉴캐슬에 사는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 애칭으로 댄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40년 가까이 나무를 다루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작업장에서 쓰러집니다. 심장 질환이 발병해 현장에서 추락한 것입니다. 의사는 당분간 절대 일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고, 댄은 질병 수당을 신청하러 관공서를 찾아갑니다.여기서 질병 수당이란 영국 사회보장 제도에서 부상이나 질병으로 ..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단종을 그저 '빼앗긴 왕'으로만 기억했습니다. 계유정난이라는 거대한 정치극의 피해자. 그게 전부였죠. 그런데 영화관을 나서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단종이 아닌 '이홍위'라는 한 인간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팩션으로 되살아난 단종의 인간미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극의 한 장르인 팩션(Faction)으로 분류됩니다. 팩션이란 역사적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하여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창작 방식으로, 사료로는 확인할 수 없는 인물의 내면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기법입니다. 장황준 감독은 이 방식을 통해 계유정난 이후의 단종에게 집중했습니다. 정변 그 자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뒤 청령포라는 유배지에 홀로..
하루가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신 적 있습니까? 저는 어느 날 문득, 밥을 먹으면서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우연히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접했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수행을 담은 이 영화, 지금 마음이 어수선하다면 한 번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플럼빌리지의 일상이 말해주는 것혹시 마음 챙김(mindfulness)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마음 챙김이란 지금 이 순간의 감각과 생각, 감정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법을 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쉽게 말해 마..
법정 스님은 2010년 입적하실 때까지 인세 수익을 모두 장학금으로 기부하셨습니다. 저도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이었습니다. 스님의 책이 그토록 많이 팔렸는데 본인은 단 한 푼도 쓰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거든요.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불교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접근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청렴한 정신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무소유를 몸소 실천한 수행자법정 스님은 '무소유'라는 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여기서 무소유란 단순히 물건을 적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얻는다는 불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스님의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난초 이야기입니다.어느 날 스님이 선물로 받은 난 화분을 집 밖 거실에 두고 외출..
솔직히 저는 제 단점을 남들에게 보이는 게 두려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 탓에 늘 완벽해 보이려고 애썼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에게 크게 상처받고 제 나쁜 소문이 전교에 퍼지면서, 오히려 숨기려던 제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됐습니다. 그 순간이 제겐 전환점이었습니다. 약점을 감추는 것보다 드러내는 편이 때로는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의 의미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 조지 6세는 말더듬이라는 언어장애(Speech Disorder)를 가진 인물입니다. 여기서 언어장애란 의사소통 과정에서 발음, 유창성, 음성 등에 문제가 생겨 원활한 대화가 어려운 상태를 의미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왕이라는 위치에 있으면..
학창 시절 제목만 알고 지나쳤던 영화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의 기분을 아시나요? 저는 '냉정과 열정 사이'가 개봉했을 때 학생이었는데, 그때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공부에 치여 영화관에 갈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때 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숙해진 지금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니 감독의 의도와 연출, 그 시대만의 정서가 훨씬 깊이 있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정적인 연출과 독특한 서사 구조일반적으로 멜로 영화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장면들로 채워진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정반대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선형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