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 시간에 오히려 문을 여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요. 저도 처음엔 그냥 제목이 특이해서 눌렀습니다. 근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때쯤엔, 이미 한 에피소드가 끝나 있었습니다.밤에만 열리는 식당, 그 설정이 이미 반칙이다일반적으로 심야 영업 식당이라고 하면 술집이나 편의점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밤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만 문을 여는 심야식당은, 낮에는 절대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사람이 가장 솔직해지는 건 피곤하고 취약해지는 늦은 밤이라는 걸, 이 영화는 설정 하나로 이미 보여주고 있었습니다.이..
현재가 답답할 때, 사람들은 습관처럼 과거를 꺼냅니다. "그때 그 시절이 좋았지"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입에 올립니다. 저도 그런 사람인지라,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꽤 오래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1920년대 파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단순한 시간 여행 판타지가 아닙니다. 현재를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꽤 정교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잃어버린 세대가 파리에 모인 이유1920년대 파리가 예술의 황금기를 맞이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 환멸을 느낀 미국 청년 지식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파리로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흔히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세대란, 전쟁의 상처와 물질..
행복을 찾아 떠난 사람이 결국 돌아온 곳이 출발점이었다면, 애초에 떠날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질문을 머릿속에 달고 다녔습니다. 잘나가는 정신과 의사가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며 훌쩍 떠나는 설정이 처음엔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졌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오히려 그게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행복의 정의, 정말 우리는 알고 있을까헥터는 미모와 능력을 겸비한 여자친구 클라라가 있고, 상담실은 환자들로 가득 차 있으며, 삶에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정작 자신이 행복한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상담실에서 "저는 불행해요"라고 말하는 환자들을 매일 마주하면서, 어느 순간 헥터 본인도 행복의 정의를 잃어버린 것이죠.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헤도닉 적응(hedonic adapta..
쉬는 날인데도 괜히 불안한 적 있으십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달력에 빨간 날이 찍혀 있어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고 하루를 흘려보낸 날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일본 영화 한 편이 제가 쉬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2007년작 〈안경〉입니다.슬로우시네마가 주는 힐링의 정체〈안경〉은 이른바 슬로우시네마(Slow Cinema) 장르에 속합니다. 슬로우시네마란 사건 전개나 갈등 구조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일상의 속도 그대로를 화면에 담아내는 영화적 방법론을 말합니다. 극적인 반전도 없고 복잡한 인물 관계도 없습니다. 그냥 밥을 먹고, 바닷바람을 맞고, 빙수를 혀로 녹이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처음 이 영화를 봤..
행정처리 때문에 어이없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아버지께서 퇴직 후 실업급여를 받으실 때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느꼈습니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바로 그 답답함을 스크린 위에 그대로 꺼내놓은 영화입니다. 심장병으로 일을 쉬게 된 목수, 댄의 이야기 영국 뉴캐슬에 사는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 애칭으로 댄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40년 가까이 나무를 다루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작업장에서 쓰러집니다. 심장 질환이 발병해 현장에서 추락한 것입니다. 의사는 당분간 절대 일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고, 댄은 질병 수당을 신청하러 관공서를 찾아갑니다.여기서 질병 수당이란 영국 사회보장 제도에서 부상이나 질병으로 ..
가족이라는 이름이 항상 따뜻한 건 아니라는 걸, 살면서 한 번쯤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04년 작품 밀리언달러베이비는 복싱 영화처럼 시작해서 전혀 다른 곳에 관객을 데려다 놓습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진짜 가족이 무엇인지를 묻는 영화입니다.미주리 깡촌에서 챔피언 자리까지, 매기의 배경매기 피츠제럴드는 미국 미주리 주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입니다. 화려한 배경도, 든든한 지원도 없이 웨이트리스로 하루하루를 버텨온 여성이죠. 손님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녀에게는 복싱이라는 단 하나의 꿈이 있었습니다.문제는 나이였습니다. 매기가 복싱을 제대로 시작하려 한 건 서른 살이 넘은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