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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모성애, 상처 치유, 지브리)

by eun1007 2026. 3. 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난해하다는 느낌부터 들었습니다. 일본의 역사적 배경이나 신화적 요소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봤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주인공 마히토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린 소녀 히미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들을 지키는 장면에서는 모성애라는 게 국경을 넘어 보편적인 감정이구나 싶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환상적인 이야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자전적 고백이자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창작자로서의 치열한 고뇌를 담은 작품입니다.

 

어머니의 부재와 모성애, 그리고 전쟁의 상흔

영화는 1944년 도쿄 대공습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마히토는 화재가 난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그 전에 굳이 옷을 갈아입고 모자까지 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의복은 세속적 집착을 상징합니다(출처: 일본 문화 연구소). 어머니가 위급한 순간에도 체면과 형식을 놓지 않는 마히토의 모습은, 어린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비겁함을 투영한 것입니다. 감독은 전쟁 부역자였던 아버지의 특혜를 받으며 풍요롭게 살았지만, 정작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지 못했던 자신을 이 장면을 통해 고백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전쟁이 개인에게 남기는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히토는 어머니를 잃은 후 새엄마인 나츠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해까지 합니다. 하지만 나츠코는 언니의 남편과 아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일본에는 '소로레이트(Sororate)'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여기서 소로레이트란 결혼한 여성이 사망하거나 불임일 경우 그 자매가 대신 아이를 낳아 가문을 잇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나츠코는 이 관습 속에서도 악의 없이 마히토를 보듬으려 했고, 결국 마히토는 그녀의 진심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중반부, 나츠코가 '산옥(우부야)'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산옥이란 일본에서 출산 전후 산모를 격리하는 공간으로, 피를 불길하게 여기던 일본인들에게는 금기의 장소였습니다. 나츠코는 마히토가 자신 때문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를 격리한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나츠코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히토에게 "너 따위는 싫다"라고 모진 말을 하지만, 이는 진심이 아니라 마히토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며 전쟁이 남긴 국민적 상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왜가리와 상처의 치유, 그리고 지브리의 종말

영화에는 왜가리라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왜가리는 이집트 신화에서 윤회와 시간선을 관리하는 신의 사자로 여겨지는데, 여기서 윤회란 생명이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을 의미하며 불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왜가리의 이름은 '아오사기'로, 일본에서 사람을 꾀어내는 요괴를 뜻합니다. 신성하면서도 불길한 존재라는 이중성은 인간의 모순을 상징합니다. 왜가리는 마히토에게 거짓말을 하며 돌탑으로 유혹하지만, 결국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친구가 됩니다.

왜가리가 했던 말 중 "상처는 상처를 낸 사람이 치유해줘야 한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히토는 왜가리를 공격해 상처를 입혔지만, 나중에는 그 상처를 직접 치유해줍니다. 반대로 왜가리도 마히토에게 입힌 심리적 상처를 함께 극복하며 치유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인간관계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감추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함께 극복할 때 관계가 더욱 깊어진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돌탑은 지브리 스튜디오를 상징합니다. 탑의 입구에는 단테의 신곡 중 "신의 권능이 나를 만들었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는 지옥문을 뜻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생전 "내게 애니메이션은 저주받은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열정이 뒤섞인 공간, 그것이 바로 지브리였던 것입니다. 탑을 쌓는 대할아버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을 상징하며, 탑을 구성하는 13개의 돌은 지브리가 제작한 작품 수와 일치합니다.

영화 속에서 대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탑을 물려받으라고 제안하지만, 마히토는 이를 거부합니다. 대할아버지가 만든 세계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순과 악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앵무새들은 나치의 문양을 들고 왕을 환호하며, 펠리컨들은 굶주림에 와라와라(새 생명)를 잡아먹습니다. 앵무새는 남을 따라하는 새로, 여기서는 맹목적 추종과 파시즘을 상징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국주의와 나치를 비판하는 장치입니다(출처: 일본 역사 교육 연구회).

저는 마히토가 대할아버지의 세계를 거부하고 현실로 돌아온 선택이 용기 있다고 느꼈습니다. 마히토는 돌탑의 돌조각 하나를 현실로 가져옵니다. 이 돌은 그가 경험한 상처와 치유의 기억을 상징합니다. 상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마주할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를 통해 지브리의 종말을 선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지브리는 최근 닛폰 테레비에 경영권을 매각했습니다.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콘도 요시후미는 사망했고, 아들 미야자키 고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할아버지가 "삼일에 하나씩 돌을 쌓으라"고 했던 말은 종교적 수행처럼 완전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지브리의 높은 기준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 기준을 충족할 후계자는 없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창작자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모순과 비겁함을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선의로 가득 찬 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가 남긴 이 돌조각 같은 영화를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았던 한 창작자의 고백이자, 평화와 사랑을 향한 간절한 메시지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제 삶을 돌아보게 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참고: https://youtu.be/nN_8ZeSs0_M?si=7k1-AsoJC7ipoz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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