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정말 나쁜 걸까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 경험을 더 많이 했습니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좋게 봤다가 선을 넘는 상황을 겪고, 결국 관계를 끊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다시 보면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이 제 인간관계 패턴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선입견이 아닌 '안전거리'로 관계를 맺는 이유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오만한 태도를 보고 그에게 강한 편견을 가졌습니다. 무도회에서 "그녀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지만, 내 마음을 끌 정도는 아니다"라는 다아시의 말을 우연히 듣고 감정이 상한 엘리자베스는, 이후 그와 마주칠 때마다 날카로운 말들을 주고받았죠. 여기서 엘리자베스가 보인 반응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가깝습니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기존 믿음을 확인해주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말합니다(출처: 대한심리학회).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좋은 면보다는 오만해 보이는 행동에만 집중했고, 위크햄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버렸습니다.
저도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선입견보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겉모습이나 사회적인 가면만 보고, 저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을 똑같은 태도로 대했습니다. 그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만큼의 선을 유지했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았죠. 기쁨도 없었지만 상처도 없었습니다. 주로 친한 친구 몇 명과만 좁고 깊은 관계를 맺었고, 그나마도 험담이나 장난스러운 비판으로 친해지는 방식은 피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방식이 저에게는 훨씬 편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 한쪽에 늘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편하게 생각하고 다가왔지만, 저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 회피(Avoidant Attachment)'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애착 회피란 친밀한 관계를 불편해하고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말하는데, 주로 과거 관계에서 상처받은 경험이 원인이 됩니다(출처: 한국상담심리학회).
완벽주의라는 방어기제와 관계의 모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 계기는 다아시의 편지였습니다. 다아시는 위크햄의 진실, 제인과 빙리의 결혼을 방해한 이유, 자신의 진심을 담은 긴 편지를 엘리자베스에게 전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아시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 그의 하인들이 말하는 다아시의 진짜 모습을 듣고 다시 한번 놀랐죠. 자신이 본 것은 다아시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제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인류애를 가진 사람이라 사람들을 좋아하고 좋게 평가하는 편입니다. 웬만하면 선입견이나 편견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들이 저를 편하게 생각하고 선을 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엔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제 성격의 모순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을 이해하는 만큼 열린 태도로 대하지만, 정작 '내 사람'의 기준은 까다로웠던 겁니다.
왜 이런 모순이 생겼을까요? 제 생각에는 저 자신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한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완벽주의(Perfectionism)란 자신과 타인에게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심한 자책감을 느끼는 성향을 말합니다. 저는 그 잣대를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와 깊이 친해지면, 제 완벽주의적 기준이 그 친구에게 향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주고 소중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오히려 더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던 겁니다.
실제로 저는 제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편입니다. 저도 결점이 많은 사람이고 남들보다 나은 점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보는 건 결과보다는 '노력하는 태도'였습니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의 가족들을 무시한 건 그들의 교양 없는 행동 때문이었지만, 결국 그가 리디아의 스캔들을 해결하고 빙리와 제인의 결혼을 돕는 등 행동으로 보여준 것처럼, 저도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노력과 태도를 더 중요하게 봤던 것 같습니다.
편견을 넘어 진짜 관계로 나아가기
영화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의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늦은 밤 산책 중 마주친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했고,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네 행복만을 바란다"며 둘의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자유분방함과 솔직함을,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내면에 숨겨진 선함과 배려를 받아들였습니다.
저도 이제는 제 인간관계 패턴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만의 삶이 있고, 제가 그들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건 저를 지키는 방법이었지만, 동시에 진짜 관계를 맺을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제 완벽주의적 기준을 남에게 적용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고, 사람들의 노력과 태도를 봐주되 결과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편견에 빠지는지, 그리고 그 편견을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아직도 배우는 중입니다. 누군가와 진짜 가까워진다는 건,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진짜 기쁨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