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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테이크 온 미 포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 키보드 리프, 들은 순간 "아 이 노래" 하고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멜로디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 Take On Me를 접했을 때 당연히 예전부터 유명한 노래니까 그냥 인기 있는 팝송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밴드의 역사를 파고들수록, 이 노래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와 고집이 쌓였는지 알게 됐고, 그 이후로 A-ha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차트 광탈에서 빌보드 1위까지, A-ha의 험난한 데뷔

    노르웨이 출신 기타리스트 폴 왁타르-사바이와 키보드 연주자 마그네 푸루홀멘은 원래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에 깊이 빠져 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사이키델릭 록이란 1960~70년대에 유행한 장르로, 복잡한 음향 실험과 몽환적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음악 스타일입니다. 그런 그들이 세계 무대를 겨냥해 의도적으로 대중성 있는 팝 리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보통 밴드와 다른 출발선이었습니다.

    둘은 보컬을 찾던 중 모든 파티에 초대받는 인기인이었던 모튼 하켓에게 Take On Me의 초기 데모를 들려줬고, 모튼은 듣자마자 이 곡의 잠재력을 알아봤습니다. 그렇게 A-ha가 결성되어 영국으로 건너가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에 성공합니다. 오디션 현장에서도 Take On Me를 불렀다고 하니, 이 곡과 밴드의 인연은 결성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셈입니다.

    그런데 정작 시장에서는 두 번이나 차트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모두가 성공을 점쳤는데 왜 안 됐을까요. 초기 버전을 들어보면 신디사이저(Synthesizer) 사운드가 눈에 띄게 빈약했기 때문입니다. 신디사이저란 전자 음원을 생성해 다양한 악기 소리를 구현하는 건반 악기로, 80년대 팝의 핵심 사운드였습니다. 이 부분이 약하니 아무리 멜로디가 좋아도 당시 라디오 전파를 타기엔 설득력이 부족했던 겁니다.

    결국 워너 브라더스가 올스타급 프로듀서 팀을 투입해 곡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다시피 합니다. 프로듀서는 키보드 트랙을 무려 스무 번 가까이 오버더빙(Overdubbing)했습니다. 오버더빙이란 기존 녹음 위에 같은 트랙을 겹쳐 쌓아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드는 녹음 기법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중독적인 키보드 소리가 완성된 것입니다.

    Take On Me 뮤직비디오, 로토스코프 기법이 만든 혁명

    음악이 살아났다면 다음은 시각이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뮤직비디오도 전면 재창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로토스코프(Rotoscope) 기법입니다. 로토스코프란 실사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인화한 뒤 그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기술로, 실사와 만화가 자연스럽게 섞인 독특한 비주얼을 만들어냅니다.

    장장 5개월에 걸쳐 수천 컷을 한 장씩 손으로 그렸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아는 그 영상입니다. 제가 처음 이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드라마 한 편을 본 것처럼 설레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만화 속 등장인물이 현실의 여성에게 손을 내밀고, 그녀가 만화 세계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 구조는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1985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MTV VMAs)에서 6개 부문을 수상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MTV VMAs는 뮤직비디오 제작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시상하는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당시 6관왕은 밴드의 시각적 완성도가 업계에서 공식 인정받았다는 의미였습니다(출처: MTV).

    A-ha의 성공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중성을 겨냥한 의도적인 팝 리프 작곡 전략
    • 두 번의 실패 후 올스타 프로듀서 투입으로 사운드 전면 재건
    • 로토스코프 기법을 통한 뮤직비디오 혁신
    • 노르웨이·스칸디나비아 최초 빌보드 핫 100 1위 달성
    • MTV 어워즈 6관왕으로 시각적 독창성 공식 인정

    A-ha take on me 앨범

    히트 이후의 균열, 그래도 40년을 버텨온 이유

    저는 개인적으로 A-ha를 좋아하는 이유가 Take On Me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인상적입니다.

    1집의 성공 이후 멤버들 사이에서 크레딧과 음악적 방향을 둘러싼 갈등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컬 모튼 하켓은 자신에게 엄격한 완벽주의자 성향으로 알려져 있고, 폴과 마그네 역시 각자의 예술적 주장이 뚜렷한 인물들입니다. 셋 다 작곡가이자 각자 악기를 다루는 예술가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밴드처럼 보컬 중심으로 구심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갈등의 씨앗이었지만 동시에 밴드를 독특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2집에서는 1집의 밝고 팝적인 색채에서 벗어나 어둡고 자아성찰적인 얼터너티브(Alternative) 사운드로 전환합니다. 얼터너티브란 주류 팝과 록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 실험적이고 내면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장르적 태도를 말합니다. 팬들 중에서는 오히려 2집을 명반으로 꼽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앨범은 조용한 밤에 혼자 듣기에 정말 좋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007 시리즈 《리빙 데이라이트》(1987) 주제가를 맡으면서 A-ha는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합니다. 특히 남미에서의 인기는 폭발적이어서, 1991년 브라질 공연에서는 20만 명의 유료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인구 400만 명의 나라에서 나온 밴드가 20만 명을 한 공연장에 모은 것입니다.

    1993년 활동 중단 이후 파경을 맞는 듯했지만, 1998년 노벨 평화상 축하 공연을 계기로 재결합합니다. 마그네의 말에 따르면 셋이 다시 모이자마자 새 곡 작업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고 합니다. 음악이 이 셋을 잇는 본질적인 끈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2015년 재결합 이후 지금도 투어를 진행 중이며, 노르웨이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는 영예도 안았습니다(출처: 노르웨이 왕실 공식 사이트).

    A-ha를 단순히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원 히트 원더란 단 한 곡만으로 기억되는 가수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미국 빌보드 기준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분류가 상당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 남미, 아시아에서 수십 년간 꾸준한 앨범과 투어를 이어온 밴드를 한 곡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A-ha가 가수 활동 내내 진실함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저는 오히려 그 자기비판적 태도가 이 밴드를 오래 살아남게 한 힘이라고 봅니다. 완성됐다고 안주하지 않고 계속 다음 앨범에서 뭔가 다른 시도를 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콜드플레이, U2, 오아시스 같은 밴드들이 공개적으로 A-ha를 영향력 있는 밴드로 언급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음악이 단지 과거의 히트로 머물지 않는다는 방증입니다. 서로에게 쉽게 칭찬하지 않는 세 사람이 40년을 함께 이어온 것, 그 자체가 제가 이 밴드를 계속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A-ha의 나머지 앨범들, 특히 2집과 3집을 아직 못 들어보셨다면 Take On Me 이후의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히트곡 하나로 기억했던 밴드가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겁니다.


    참고: https://youtu.be/CLHl7IvFEto?si=pUp-MkJPMDez2h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