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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일은 산더미인데 자꾸 미루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이건 내 상황이 안 되니까",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하며 합리화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있죠. 저도 그런 날들이 꽤 많았는데, 어느 날 본 영화 한 편이 그 핑계들을 조용히 무너뜨렸습니다.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 IQ 75의 한 남자가 그냥 살았을 뿐인데 결국 모든 걸 이뤄낸 이야기입니다.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된 삶

    포레스트 검프는 경계성 지능장애(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경계성 지능장애란 IQ가 71~84 사이에 해당하는 상태로, 정상 범주와 지적장애 사이에 위치하며 일반적인 교육 과정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말합니다. 여기에 더해 선천적인 척추 측만증으로 인해 다리 보조기를 착용해야 했고, 또래 아이들의 냉랭한 시선은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검프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의 태도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차별 없이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의 이야기가 보통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끊임없이 "너는 다른 사람과 똑같아"라고 말해 줬으니까요.

    국내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적 장애를 가진 아동의 사회 적응 능력은 초기 양육 환경과 보호자의 태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검프의 어머니가 단지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로도 의미 있는 양육 방식을 보여준 셈입니다.

    뛰기 시작하면 열리는 길

    검프의 인생에서 달리기는 단순한 행동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어릴 적 친구 제니의 "뛰어!"라는 한마디에 시작된 달리기가 미식축구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대학 입학으로 이어졌고, 군 입대 후에는 전장에서 동료들을 구하는 결정적인 능력이 됩니다. 저도 이 흐름을 따라가다 문득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검프는 한 번도 "이걸 해서 뭐가 될까"를 계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군 복무 중 그는 탁구를 배우게 됩니다. 탁구라는 종목이 군 병원에서 재활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검프는 시간이 날 때마다 탁구채를 놓지 않았고 결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하게 됩니다. 핑퐁 외교(Ping-Pong Diplomacy)라는 역사적 맥락도 영화 속에 녹아 있는데, 핑퐁 외교란 1971년 미국과 중국이 탁구 교류를 통해 냉전 시대의 긴장을 완화한 실제 역사적 사건을 말합니다. 검프는 그 역사의 한 장면에 그냥 서 있었던 것이고요.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메시지를 줬습니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치밀하게 계산해서 시작한 일보다, 그냥 지금 눈앞의 것에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이 나중에 더 큰 기회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검프가 바로 그 공식을 몸으로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성실성과 낙관성이 만들어 낸 결과

    친구 버바를 전장에서 잃은 검프는 그 슬픔을 핑계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공훈장 수상 후 받은 포상금으로 새우잡이 배를 구매합니다. 이때 함께한 사람이 테일러 중위인데, 처음에는 검프의 계획을 비웃던 인물이었습니다.

    새우잡이 초반에는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허탕 치던 어느 날, 허리케인급 폭풍이 몰아치면서 주변 어선들이 모두 침몰합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선박이 바로 검프의 배였고, 이후 조업 해역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버바 검프 쉬림프 컴퍼니(Bubba Gump Shrimp Company)라는 새우 기업을 세우게 됩니다. 쉬림프 컴퍼니란 새우잡이 및 관련 식품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형태를 가리키는데, 이 이름은 영화의 실제 라이선스를 받아 현실에서도 레스토랑 체인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장면에서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늘이 도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폭풍이 와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검프가 그 배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폭풍 이후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이 장면이 가장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포레스트 검프가 보여준 태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목표의 결과보다 지금 하는 행동 자체에 집중한다
    • 실패나 상실 앞에서도 다음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 주변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킨다
    • 약속과 관계에 진심을 다하는 책임감을 유지한다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찾아오는 것

    제니에게 프러포즈를 거절당한 검프는 그 다음 날 무작정 달리기 시작합니다. 목적지도 없이 달리기 시작한 이 행동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왜 달리냐"고 묻고, 검프는 "그냥 달리고 싶어서"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이 대답에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만, 검프는 사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3년 넘게 달린 후 검프는 갑자기 멈춥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장면이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인데, 검프는 끝을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냥 멈추고 돌아설 뿐입니다. 삶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창한 마무리보다 조용히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걸요.

    미국 심리학회(APA)가 발표한 회복탄력성(Resilience) 연구에 따르면, 삶의 어려움을 견디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의미 있는 관계와 단순하고 명확한 행동 루틴이라고 합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회복탄력성이란 역경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심리적 능력을 말합니다. 검프의 삶 전체가 이 개념을 자연스럽게 살아낸 사례처럼 보입니다.

    제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검프는 아들을 키우며 살아갑니다. 슬픔을 이유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이유를 찾아 달려 나갑니다. 어머니의 유언처럼,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무엇을 집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집어들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계산하고, 너무 많이 비교하고, 그 과정에서 지쳐서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프는 그냥 했습니다. 결과를 몰랐지만 그냥 달렸고, 뛰었고, 잡고, 지켰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거창한 메시지를 기대하기보다 그냥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듯 보시길 권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어질 겁니다.


    참고: https://youtu.be/xC3loNtNuzE?si=zff1kmm8f89xhi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