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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이 항상 따뜻한 건 아니라는 걸, 살면서 한 번쯤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04년 작품 밀리언달러베이비는 복싱 영화처럼 시작해서 전혀 다른 곳에 관객을 데려다 놓습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진짜 가족이 무엇인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미주리 깡촌에서 챔피언 자리까지, 매기의 배경
매기 피츠제럴드는 미국 미주리 주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입니다. 화려한 배경도, 든든한 지원도 없이 웨이트리스로 하루하루를 버텨온 여성이죠. 손님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녀에게는 복싱이라는 단 하나의 꿈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나이였습니다. 매기가 복싱을 제대로 시작하려 한 건 서른 살이 넘은 뒤였습니다. 트레이너 프랭키 던은 처음에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복싱 선수로 커리어를 쌓기에 너무 늦은 나이라는 이유였죠. 저도 이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프랭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그러나 매기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프랭키의 마음을 돌립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커리어 스타트 에이지(Career Start Age), 즉 선수 입문 적정 연령 문제입니다. 복싱 같은 격투 스포츠에서는 일반적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신체 능력의 정점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기의 도전은 통계적으로도 불리한 출발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르바이트 팁을 모아 복싱 용품을 사고, 매일 새벽 해변을 뛰며 컨디셔닝(Conditioning), 즉 경기에 필요한 체력과 심폐 능력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매기가 링에 올라 연전연승을 거두며 마침내 타이틀 매치(Title Match) 기회를 잡기까지의 과정은, 꿈이란 나이와 상관없다는 걸 보여주는 서사입니다. 여기서 타이틀 매치란 특정 체급의 챔피언 자리를 놓고 벌이는 공식 선수권 경기를 뜻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노력의 방향이 맞으면 늦은 시작도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반칙 한 방이 바꿔놓은 것들, 그리고 안락사 윤리
이 영화가 단순한 성공 스토리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결정적인 반전 때문입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상대 선수의 야비한 반칙으로 매기는 목뼈 골절을 입고 전신마비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죠.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가족의 반응이었습니다. 매기가 쓰러진 후 나타난 가족들이 한 첫 번째 행동은 병문안이 아니라, 매기의 재산을 자신들 앞으로 양도하는 법적 서류에 서명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무리 영화라도 이 장면은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반면 프랭키는 매기 곁을 지킵니다. 미국 전역의 병원을 수소문하며 치료 방법을 찾아다닌 것도 프랭키였습니다. 그리고 매기는 자신이 복싱을 할 수 없는 몸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며 프랭키에게 안락사(Euthanasia)를 부탁합니다. 여기서 안락사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종료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윤리적·법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마음이 가장 복잡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는 입장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끊는 행위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사자가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고 할 때 그것을 단순히 윤리 원칙 하나로 막아버릴 수 있는지는 쉽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생명윤리학(Bioethics) 분야에서는 이 문제를 자율성 원칙(Autonomy Principle)과 해악 금지 원칙(Non-maleficence) 사이의 충돌로 설명합니다. 자율성 원칙이란 환자 스스로 자신의 치료 방향을 결정할 권리를, 해악 금지 원칙이란 의료 행위가 환자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우선시해야 하는지는, 각국의 법과 종교,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문제를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살펴보면, 현재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 일부에 불과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국내에서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스스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습니다(출처: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여기서 연명의료결정법이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같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스스로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한 법률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안락사 자체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Hospice Palliative Care) 방향은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란 말기 환자의 신체적 고통을 줄이고 심리적으로 편안한 임종을 돕는 의료 서비스를 뜻합니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죠.
이 영화에서 매기의 결말을 두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감상을 갖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
이 영화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들었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족이 될 수 있는가?
프랭키는 매기에게 게일어로 '모쿠슐라(Mo Cuishle)'라고 쓰인 망토를 선물합니다. 모쿠슐라란 '나의 소중한 혈육'이라는 의미의 게일어 표현입니다. 말 그대로, 프랭키에게 매기는 피와 상관없이 딸 같은 존재였던 겁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눈물을 흘린 건, 그게 단지 감동적인 장치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진짜 메시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제게 던진 또 다른 질문은 죽음에 대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삶을 열심히 살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잘 준비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게 부정적이거나 불길한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매기의 삶은 결과로만 보면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낸 방식, 즉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걸어간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도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가 죽음 앞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면, 매기는 분명 자신의 삶에 부끄럽지 않았을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 꿈을 향한 도전에 나이 제한을 스스로 두지 않는 것
- 가족이라는 이름에 기대기보다, 진짜 신뢰로 관계를 쌓는 것
-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현재를 후회 없이 살아내는 것
- 타인의 고통 앞에서 원칙만큼이나 공감을 함께 갖는 것
이 글은 영화를 직접 보고 느낀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공유한 것이며, 생명윤리에 관한 전문적인 의료 또는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밀리언달러베이비는 화려한 복싱 영화가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이유가 생겼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후회 없이 살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 조용히 앉아서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