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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다큐 (문제의식, 자연관, 애니미즘)

by eun1007 2026. 5. 17.

솔직히 저는 그를 그냥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쯤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봤던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재미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제가 20여 년 동안 그의 작품을 표면만 훑었다는 게 부끄러워졌습니다.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뒤에 이 정도의 문제의식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전쟁과 물질문명이 빚어낸 문제의식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해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고, 어린 시절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폭격 소리입니다. 가족이 도쿄를 떠나 이주한 우쓰노미야 지역에도 대규모 공습이 있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도 그가 네 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이 전쟁 체험이 그의 창작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기저(基底)가 되었습니다. 기저란 어떤 사상이나 예술 세계의 밑바닥에 깔린 근본 토대를 뜻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접하고 처음에는 "설마 애니메이션에 그게 다 담겨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떠올려보니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모두 전쟁 장면으로 시작하거나 전쟁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이걸 몰랐던 저는 그냥 판타지 배경이겠거니 했는데, 사실 그것은 작가의 생리적 기억에서 나온 장면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양가성(兩價性)입니다. 양가성이란 하나의 대상에 대해 긍정과 부정, 매력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말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이 양가성을 뚜렷하게 보입니다. 바람이 분다에서 전투기 설계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지브리(Ghibli)라는 스튜디오 이름을 2차 세계대전 군용기 명칭에서 따온 것도 그 증거입니다. 그는 기계 문명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찬미하지도 않습니다. 사물의 여러 면을 동시에 바라보는 이 태도가, 제가 보기에 그의 작품이 단순한 환경 메시지물로 소비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핵심을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 전쟁 체험을 통한 폭력성과 파괴에 대한 감각적 기억
  • 버블 경제 붕괴, 옴진리교 사건, 고베 대지진 등 90년대 일본 사회의 격변
  • 테크놀로지에 대한 양가성, 즉 매혹과 공포의 공존
  • "세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작품에 직접 던지는 작가 의식

특히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는 이 모든 요소가 집약된 작품입니다. 모노노케 히메는 1997년작으로, 10만 4천 장의 그림을 셀(cel) 방식으로 제작한 마지막 대작입니다. 셀 애니메이션이란 투명 셀룰로이드 필름에 캐릭터를 직접 그리고 채색하는 전통적 제작 방식으로, 현재는 디지털로 거의 대체되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본인을 가리켜 "종이와 연필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라고 했는데, 그 자부심과 아쉬움이 동시에 담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를 만들 때 그는 결말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화해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중 애니메이션은 갈등을 봉합하는 해피엔딩을 선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이 작품을 다시 떠올려보니 실제로 결말이 모호합니다. 그게 불완성처럼 느껴졌던 게 이제는 의도된 불완성임을 알겠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는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애니미즘과 자연관이 만들어낸 세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단지 환경 보호 메시지 영화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의 자연관이 단순한 환경주의보다 훨씬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애니미즘(animism)입니다. 애니미즘이란 자연의 모든 사물, 즉 나무, 강, 바위, 동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세계관으로, 일본 신토(神道)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애니미즘이 일본 토착 문화의 정체성이라고 보면서, 현대 일본인들이 그것을 잃어버린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이웃집 토토로의 거대한 녹나무, 모노노케 히메에서 발걸음 아래 생명이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시시신(일본 신화의 숲의 신)이 바로 그 세계관의 표현입니다. 시시신이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동시에 죽이기도 한다는 설정은, 신성함이란 선한 것만이 아니라 생사 양쪽을 모두 품을 때 완성된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합니다. 저는 어릴 때 그 장면이 그냥 무서웠는데, 이제야 왜 그렇게 그려졌는지 이해가 됩니다.

엔트로피(entropy) 법칙도 이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엔트로피란 에너지가 점차 분산되고 질서가 무너지는 방향으로 흐르는 자연의 법칙으로, 생명체가 태어나 성장하고 결국 소멸하는 과정 자체가 이 법칙의 적용입니다. 인간도 예외가 없다는 것, 즉 인간 역시 자연적 존재라는 점을 다큐멘터리 안의 생물학자가 강조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전체가 바로 이 명제 위에 서 있습니다.

그는 애니메이터의 작업을 라멘집 주인이 매일 같은 국물을 끓이는 일에 비유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일을 꾸준히 반복한다는 것. 이 말이 저한테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장인(匠人)의 태도로 질문을 던지는 것. 그 태도가 수십 년에 걸쳐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작가로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중국 애니메이션 백사전(白蛇傳)을 보고 처음으로 창작 욕구를 느꼈습니다. "내가 만든다면 이것보다 잘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보면 모방하고 싶다는 충동이 먼저 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제가 직접 그의 인터뷰 내용을 접해보니, 그는 '따라 하겠다'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제대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예술가의 야망이고, 동시에 그 첫 작품인 백사전에서 자연적 존재(뱀)와 인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유네스코(UNESCO)가 2025년 발표한 문화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전 세계 애니메이션 문화유산 분야에서 가장 높은 국제적 영향력 지수를 기록한 사례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출처: UNESCO). 이것이 단순한 오락성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 인류의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번 다큐를 통해 다시 확인했습니다.

또한 환경 파괴와 자연 재난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1990년대부터 이 문제를 애니메이션 서사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은 그가 시대를 꽤 앞서 읽은 작가임을 보여줍니다(출처: IPCC).

미야자키 하야오 다큐를 보고 나서 그의 작품을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스토리와 그림체만 봤다면, 이제는 전쟁의 기억이, 어머니의 부재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어느 장면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이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동시에 사랑받는 이유가 이제는 조금 이해됩니다. 인류 공통의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의 작품을 오락 영화로만 봤다면, 한 편만 다시 꺼내서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전과 다르게 읽힐 것입니다.


참고: https://youtu.be/-P4PR54_Apc?si=tsQyWtuPTB5XDy5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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