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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렇게까지 오래 머릿속에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본 영화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몬스터 콜〉을 넣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철학적이고, 인간의 심리를 아주 깊은 곳까지 건드립니다. 판타지라는 껍데기 안에 담긴 이야기가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게 처음엔 예상 밖이었습니다.

    몬스터 콜 포스터

     

    인간 본성의 이중성, 괴물이 건네는 세 가지 이야기

     

    영화는 13살 소년 코너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암투병 중인 어머니, 이혼으로 부재한 아버지, 학교에서 이어지는 따돌림. 이 모든 짐을 혼자 지고 있는 코너에게 매일 밤 12시 7분이 되면 나무 괴물이 나타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왕자와 왕비에 관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선한 왕자, 악한 왕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왕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직접 죽이고 그 죄를 왕비에게 덮어씌워 왕권을 되찾은 살인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이후엔 왕국을 훌륭하게 이끄는 왕이 됩니다. 괴물은 바로 여기서 핵심을 짚습니다. 인간의 이중성(dual nature)이란 개념인데, 쉽게 말해 한 사람 안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악인이라고 해서 선한 면이 없는 것도, 선인이라고 해서 악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존경받는 목사와 외면받는 약제사입니다. 목사는 약제사를 불법 약제 사용자로 비난하며 지역 사회에서 추앙받았지만, 정작 자신의 두 딸이 불치병에 걸리자 그 약제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습니다. 괴물은 목사가 신념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그의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여기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인지 부조화란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실제 행동 사이에 충돌이 생길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의미합니다. 목사의 이야기는 그 충돌의 결말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괴물이 전하는 이야기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첫 번째 이야기: 선악의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중적 존재다.
    • 두 번째 이야기: 신념을 말로만 외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행동이 진심을 증명한다.
    • 세 번째 이야기: 코너 자신의 이야기. 죄책감은 스스로가 만든 감옥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내러티브 치료(narrative therapy)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내러티브 치료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감정을 언어화하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 회복을 이끌어내는 치료 방식입니다. 괴물의 세 이야기는 정확히 이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죄책감의 실체, 코너가 숨긴 네 번째 이야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장면은 코너의 악몽 장면입니다. 무너지는 건물, 절벽 끝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코너. 매번 그 손을 놓쳐버리는 꿈. 처음엔 단순한 공포 장면처럼 보였지만, 나중에 그 의미를 이해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코너는 사실 어머니의 죽음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고통이, 이 기다림이 너무 힘들어서. 그 생각을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어서 죄책감(guilt)이라는 감정으로 억압하고 있었던 겁니다. 죄책감이란 자신이 잘못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자기 처벌적 감정 반응으로, 억압될수록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학교 폭력 장면으로 연결됩니다. 코너를 괴롭히던 학생이 어느 날 "너는 우리에게 투명 인간이야"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코너는 그 학생을 병원에 실려 갈 만큼 폭행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은 단순한 분노 폭발로 오해받기 쉬운데, 사실 이건 자기 처벌(self-punishment)의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자기 처벌이란 내면의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외부에서 벌을 받으려는 무의식적 심리 행동입니다. 코너는 괴롭힘을 당하면서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받고 있다고 느꼈던 거죠.

    괴물은 코너에게 말합니다. "너는 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 저는 이 한 마디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책감을 심어준 것은 코너 자신이 아닙니다. 감당하기 너무 버거운 현실이 13살짜리 아이에게 그 감정을 억지로 안겨준 것입니다. 아동 심리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된 아동일수록 죄책감과 자기 비난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치유의 시작, 진실을 말하는 용기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고 또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병상에서 어머니는 코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화가 나면 화를 내도 돼.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어머니 자신도 죽음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 아들의 감정을 먼저 염려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치유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봅니다. 감정 표현 억제(emotional suppression)를 내려놓는 것, 즉 억눌러 왔던 감정을 언어로 꺼내는 행위 자체가 심리적 회복의 출발입니다. 감정 표현 억제란 자신의 감정을 의식적으로 숨기거나 부정하는 상태를 말하며,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코너가 괴물 앞에서 처음으로 "나는 어머니의 손을 놓고 싶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용기였습니다.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솔직함이 치유(healing)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저도 이 장면에서 코너에게 완전히 이입해서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영화의 여운이 아직까지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몬스터 콜〉은 판타지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은 인간 심리에 관한 가장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아픔을 부정하지 않고, 죄책감에 무너지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는 것이 어떻게 사람을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가 작은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애쓰고 있는 모든 분들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참고: https://youtu.be/klyij5fVQTE?si=lQe8yEL7qJJtuDv1